같은 듯 다른 한중일 용 이야기-박승규 교수 용 시리즈(2)

칼럼 > 2024-01-10 19:55:00

▲ 세종파라미 박승규 논설위원      

  대전대학교 디지털신기술융합학부 교수


용은 대륙의 중국, 해양의 일본, 반도의 한국, 그리고 서양에서 각각 다른 문화로 발전해 왔다. 중국 무협영화 제목에는 ‘용’이라는 말이 특히 많이 들어간다. ‘용형호제’ ‘용쟁호투’ ‘삼국지 용의 부활’ ‘와호장룡’ 등이 그렇다. 


조자룡이라 부르는 <삼국지> 촉한의 무장은 ‘조운 자룡(趙雲子龍)’이다. 하지만 이소룡, 성룡, 적룡 등과 같은 유명 액션 영화배우는 사실 본명이 아니다. 영웅적 캐릭터를 극대화하기 위해 용의 상징적인 이미지를 빌렸다. 


일본 역시 용의 신화가 여럿 존재한다. 일본의 용은 토지를 수호하는 토지신 개념이 강하다. 일본 고서에 등장하는 ‘용왕태랑(龍王太郞)’은 인간인 아버지와 용의 화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짐승을 부릴 수 있는 소환수의 능력을 타고난 그는 어머니가 남긴 적의 정체를 밝혀 주는 음양 거울을 들고 모든 악귀와 나라를 어지럽히는 신하와 도둑, 반역자를 물리쳤다. 강인함과 힘의 상징인 ‘용왕태랑’은 일본 사무라이에 이어 지금도 야쿠자들이 가장 열광하는 타투다.


일본에서 용은 문화 콘텐츠로 발전을 거듭했다. 한국, 중국과 달리 권위적 상징성보단 대중문화에서 인기를 끌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하쿠’라는 백룡 캐릭터가 등장한다.


 소년만화의 영원한 바이블 ‘드래곤볼(용의 구슬)’ 제목 그 자체로 신비의 구슬을 7개 모으면, 신룡이 나타나 ​소원을 하나 들어 준다. 주머니 속의 괴물 ‘포켓몬스터’ ‘망나뇽’은 서양식 용을 모티브로 했다. 용답게 강력한 힘을 자랑한다. 시대가 변화면서 문화콘텐츠로 흡수되기 위해 그 상징물이 갖는 권위가 깨지고, 자연스럽게 친근한 캐릭터로 변모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건국 신화에도 용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아마 시조들의 비범함과 신성함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고구려 시조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는 지상에 내려올 때 다섯 마리 용이 끄는 수레를 탔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 부인 알영은 용이 알영정 우물가에 나타나 낳은 딸이라고 한다. 


백제금동대향로는 위용 넘치는 용 한 마리가 연꽃 봉오리를 물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백제 말기 ‘조룡대’ 설화도 주목된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금강에서 백마를 미끼로 백제왕을 돕는 용을 낚자 곧 백제가 멸망했다. 여기서 용은 사실상 백제의 왕실 또는 왕권을 보호하는 호국용을 의미한다. 


신라 거타지 설화, 태조 왕건 탄생과 관련한 작제건 설화에도 우물과 용녀가 비중 있게 나온다. 태조 왕건의 할머니, 즉 작제건의 아내가 용으로 등장한다. 용꿈은 최고의 꿈으로 쳤다. <용비어천가>가 바로 그런 예다. 조선 태조 이성계 할아버지 도조의 꿈에 백룡이 나타난다. 흑룡을 죽여 달라는 청을 들어주자, 백룡이 도조에게 자손이 왕위에 오를 것을 예언했다. 


용은 산을 지키는 호랑이와 영원한 맞수였다. 대칭 관계를 이루어 ‘좌청룡 우백호(左靑龍 右白虎)’라는 풍수지리의 기본구도를 만들었다. 조선시대 말까지 가뭄이 극심해 기우제를 지낼 때면, 호랑이 머리를 잘라 한강에 넣었다. 태종과 세종 연간 통털어 수십마리 호랑이 머리가 잘렸다. ‘용호상박’이라는 말처럼, 두 동물이 싸울 때는 천둥번개가 몰아치고 비가 온다는 풍습에서 비롯됐다.

 

호랑이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물속에서 용은 단연 최고다. 모든 하천과 호수에는 그곳을 관리하는 용신이 있었다. 용소·용정·용연·용담 등은 전국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지명들이다. 신으로 숭배되는 용중에서 네 곳의 바다와 비바람을 관장하는 사해용왕(四海龍王)이 가장 유명하다. 사해용왕의 바닷속 궁전, 즉 용궁을 수정궁이라 한다. 


<심청전>에서 효녀 심청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인당수 제물이 되었으나 다행히 용왕이 구해준다. <별주부전>에서 용왕을 살리고자 토끼의 간을 찾아 육지에 온 자라는 토끼를 데리고 바다 용궁으로 간다. 지금도 한 해의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어민들은 바닷가 앞에서 용왕제를 지낸다.

 


 

▲ 등용문 고사를 표현한 중국의 ‘이어도용문(왼쪽)’, 조선시대의 민화 ‘약리도(가운데)’, 프랑스 파리 기메 동양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어변성룡도(오른쪽)’

기자 / @

기사 댓글 0기사 댓글 펴기

작성자 비밀번호 스팸방지 문자입력 captcha img 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