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시리즈(16) 용호상박, 호랑이와 용을 싸우게 해 비를 기원하다 ..

칼럼 > 2023-01-16 01:44:00

농경 국가에서 물은 백성의 생존과 국가 존폐를 좌우한다. 비에 대한 관심은 멀게는 단군신화까지 올라간다. 환웅은 3명의 신하와 3천의 무리를 거느리고 하늘에서 내려왔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는 모두 비바람과 관계된 인물이 아니던가.  


삼국사기에 나오는 기상 관련 기록 424건 중 가뭄이 112건으로 가장 많다. 가뭄이 심할 때마다 왕은 자신의 덕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궁궐이나 종묘에서 제를 올렸다. 백제 아신왕 11년(402년) 여름에 큰 가뭄이 들어 벼가 타들어가자, 왕이 직접 횡악(橫岳·북한산)에서 기우제를 지내니 곧 비가 내렸다. 


동양에서는 물을 지배한다는 용과 관련한 의식이 많다. 이른바 운행우시(雲行雨施). 즉 마음대로 비를 오게 하거나, 멈추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용은 가뭄 때 기우의 중요한 대상이었다. 용이 사는 웅덩이를 뜻하는 ‘용소’가 기우제 장소로 인기를 끈 이유다. 용을 그려 물속에 넣으면서 지내는 기우제 화룡제(畵龍祭)는 여기에서 비롯됐다. ‘화룡기우’의 유래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 628년 신라 진평왕 50년 “여름에 큰 가뭄이 들어 시장을 옮기고, 용을 그려 비를 빌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시장이 있는 곳은 음기가 성한 까닭에 시장을 양기가 성한 남쪽으로 옮기면 비가 내린다고 믿었다. 기우제에 용이 등장한 사실은 여러 문헌을 통해 살필 수 있다. 고려 1086년(선종3), 1089년 때도 가뭄이 오래 지속되자 ‘화룡기우’를 진행했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가뭄이 심해지면 기우제를 지낼 때 호랑이를 잡아 그 머리를 한강 물속에 집어넣었다. 이 의식은 ‘침호두(沈虎頭)’라고 불렸다. 용호상박이라는 말 처럼, 물속에 호랑이를 집어 넣으면 비를 부르는 용이 호랑이와 싸우느라 활동을 재개하길 기대했던 데서 기원했다고 한다. 싸움 상대를 집어넣어 강제로라도 용을 움직여 비가 내리길 바랐다는 것이다. 호랑이 머리를 강에 넣는 의식은 ‘침호두(沈虎頭)’의식은 1809년(순조9)까지 관행으로 진행했다.

 

 

▲ 용호상박, 호랑이와 용을 싸우게 해 비를 기원


■ 5월 10일 경에 내리는 비 ‘태종우(太宗雨)’

가뭄이 극심했던 1402년(조선 태종2) 7월 2일, 왕은 종묘사직과 명산·대천 등에 대신을 보내 기우제를 지냈다. 또 무녀와 맹인, 승려까지 모아놓고 비를 빌게 했다. 조선은 유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를 탄압했으나 도교·불교·무속 신앙이 뒤섞인 기우제는 예외였다. 평상시 천대를 받았던 맹인과 무당은 물론 조선시대 배척했던 승려들까지 기우제에 몽땅 동원됐다. 


태종은 기우제를 지낸 후 비가 오면 참여했던 무당이나 승려에게 모시나 베, 쌀 등을 하사했다. 태종 재위 18년간 1403년(태종3)을 제외하곤 모두 기우제에 관한 기록이 있다. 나머지 17년 동안 매년 평균 2-3회씩 기우제를 지냈다. 


해마다 5월 10일 경에 내리는 비를 특별히 ‘태종우(太宗雨)’라고 부른다. 이 날은 태종의 기일이다. 1422년(세종4) 태종이 승하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던 무렵 날이 몹시 가물었다. 세종은 백방으로 기우제를 지냈다. 태종이 근심하며 비장하게 말했다. “이렇게 심한 가뭄이 드니 백성들이 어찌 살라는 것인가. 과인이 죽어서 하늘에 올라간다면 천제(天帝)에게 즉시 비를 내려달라고 하겠다.” 


그토록 비를 기다리던 태종이 승하한 4일 뒤, 실록은 ‘큰비가 왔다’고 적었다. 단비가 내린 그해는 풍년이 들었다. 이후 해마다 5월 10일이 되면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백성들은 이를 일컬어 ‘태종우’라 했다. 이순신 장군까지 <난중일기>에서 ‘태종우’에 대한 언급했을 정도로 조선 사회에 널리 전파된 이야기다. <난중일기>에는 오랜 가뭄을 걱정하거나, 비가 내려 기뻐하는 모습이 여러 번 나온다.



▲ 남아프리카 줄루족의 기우제. 공주를 제물로 바친다



글 박승규 논설위원   



박은주 기자 / silver51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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