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시리즈(11) 서서쏴, 누워쏴, 달리면서 쏴 ..

칼럼 > 2022-10-26 23:43:18

1439년(세종21) 윤2월, 수양이 23세 때 일이다. 세종이 강원도 철원·평강 지역에서 강무를 열었다. 이때 9마리의 사슴이 나타났는데, 수양이 그 중 6마리를 쏘아 죽였다. 또 5마리의 사슴이 함께 내려오자, 그중 4마리를 쏘아 죽였다. 세종과  문종의 칭찬이 쏟아졌다. 그런데 이뿐만이 아니다. 이날 수양은 편전 화살 하나로 한꺼번에 사슴 6마리를 죽였다. 그것도 두 번이나. 또 화살 한 방에 5마리를 죽인 것이 도합 네 번 이었다.  


따블, 따따블. 일타육티 아니, 일발육록. 전설의 시작이다. 수양의 화살 솜씨는 증조할아버지 태조 이성계를 가볍게 넘어선 것이다. 이쯤 되면 올림픽 양궁 4연패쯤 되는 각이다. 천하의 이성계도 젊은 시절에 화살 하나로 까마귀 5마리를 떨어뜨리고, 노루 두 마리 잡은 게 최대치였다.


게다가 달아나던 사슴이 수양이 탄 말 위를 뛰어넘었다. 수양은 이를 쳐다보다가 활을 쏘아 관통시켰다. 이와 같은 일이 두 차례나 거듭 됐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 장면에다가 안젤리나 졸리 주연 영화 <원티드>의 ‘누워 쏴’와 흡사한 명장면을 시전 한 것. 정조 때 발간한 조선 최고의 <무예도보통지> 마상재(馬上才)를 미리 재현했다. 요즘 인터넷 용어로 ‘존멋’.


■ 존멋, 전설의 보우마스터 수양대군, 이성계와 로빈후드가 울고 가다


1436년(세종18) 어느 날 수양은 “천하의 책을 다 읽지 않고서는 나는 다시 활을 잡지 않겠노라”고 선언한다. 실제 그후로 3년 동안 실록에는 수양의 사냥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정말 그럴까? 아마 수양은 3년간 사냥을 끊고, ‘절렵’한 게 아니었다. 남몰래 ‘화살 신공’을 닦은 것 같다. 


1439년(세종21) 윤2월, 사냥대회를 주선하던 자는 “어제 수양대군이 활로 쏜 것이 대충 68마리나 됩니다. 그리고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이 또 몇 마리인지 알 수 없습니다”라고 보고했다.


그날 수양은 세종 이하 모든 강무 참석자들에게 ‘뭔가 보여 주려고’ 단단히 준비한 것 같다. 일종의 떡밥용 말과 연출까지 완벽한 하루였다. “세조(수양)가 용맹을 보이려고, 둔한 말을 타고는 노루를 쫓았는데, 그 말이 수십 번 넘어졌다. 그러나 세조는 그때마다 말에서 빠져나와 우뚝 서곤 했다”-<세조실록 총서> 


교통사고가 난 줄 알았는데, 멀쩡히 일어난 것이다. 그것도 수십 번이나. 뼈가 부러지기는커녕 손끝 하나 안 다쳤다. 수양은 낙법의 일인자이자, 반사 신경이 대단했나 보다. 몰이꾼 장수 성달생은 매번 수양대군이 넘어지는 말에서 뛰어내려 서니 이를 매우 신기하게 생각했다. 물론 일부러 잘 넘어지는 늙고 병든 말을 골라 탄 수양의 헐리우드 액션 솜씨를 몰랐던 것 같다. 이날 수양이 다치거나 죽었다면, 17년 후 자신의 손자 성삼문이 세조에 참살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회 계속)

 



 

▲ 안젤리나 졸리 주연 영화 <원티드>의 ‘누워 쏴’  장면




글 박승규 논설위원   

박은주 기자 / silver51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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